[배성철 칼럼] AI가 가르칠 수 없는 것
AI, 지식은 전달해도 관계는 못맺어
교육의 본질은 교사의 신뢰와 책임
AI시대 사람간 관계 중심 교육 중요
“이제 교사는 필요 없다.” 요즘 쏟아지는 AI 개인교습 앱의 홍보 문구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24시간 지치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을 담고 있으며,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으로 응답한다.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만 놓고 보면, 인간 교사는 이미 패배했다. 불편하지만 솔직해지자. 강의실에서 교사가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챗봇은 더 싸고 더 정확하게 해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교사가 필요 없는 시대로 가고 있는가.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AI는 교사를 불필요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교사가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오히려 드러냈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진실은 단순하고도 오래된 것이다. 교육은 본래 관계노동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곁에서 그를 믿어 주고, 그의 성장을 자기 일처럼 떠안으며, 실패의 순간까지 함께 견디는 일. 그것이 가르침의 본질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그 관계가 흐르는 하나의 통로였을 뿐, 교육 그 자체였던 적은 없다. 산업혁명 이후 전문지식의 전달이 중요해지면서 그 통로가 워낙 눈에 잘 띄었던 탓에, 우리는 오래도록 지식전달을 교육으로 착각해 왔다. AI가 이제 그 전달을 대신 떠맡으면서 비로소 통로가 아니라 관계라는 본질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관계는 신뢰와 책임이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 먼저 신뢰에 대해 생각해 보자. AI 알고리즘은 언제나 답을 제시하지만, 약속하지 않는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지식을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성장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약속 위에 세워진다. 학생이 교사의 말을 신뢰하는 것은 그 말이 정확해서가 아니다. 그 말 뒤에, 자신을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신뢰의 근거로 내밀지만, 정작 신뢰의 본질인 ‘관계의 역사’는 갖고 있지 않다. 더 결정적인 것은 책임이다. 한 학생이 길을 잃고 무너질 때, 그 실패 앞에 함께 설 주체가 있어야 한다. AI는 틀린 답을 내놓아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학생을 잘못 이끌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귀속시킬 책임의 자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 위태로운 만큼 고귀한 것은, 그 결과에 대해 끝내 누군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책임 없는 가르침은 가르침이 아니라 지식 검색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 교실에 앉아 있는 세대에게 이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들은 코로나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학창시절의 결정적인 몇 해를 화면 너머로 흘려보냈다. 눈을 맞추고, 부딪치고, 화해하며 관계의 근육을 키워야 할 시기에 많은 학생들이 격리된 방 안에 홀로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일 자체를 버거워하는 세대를 마주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수록, 지치지 않고 늘 응답해 주는 AI와의 대화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은 이 세대가 처한 위기를 한층 위태롭게 만든다. 관계 맺기가 서툰 세대일수록, 관계를 가르치고 관계 속에서 배우는 교육의 자리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AI가 교사의 잡무를 덜어줄 것이다’는 구호를 마냥 반기지 못한다. 자칫하면 정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격려와 즉답이라는 관계의 ‘흉내’를 맡고, 교사에게는 출석 관리와 성적 입력 같은 잔무만 남는 ‘속 빈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마음이 무너진 청소년이 교사도 부모도 아닌 챗봇에게 속을 털어놓다가 비극에 이른 사례가 국내외에서 잇따랐다. 관계가 빠져나간 자리를 관계의 흉내가 채웠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 비극들은 아프게 증언한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길러야 하는가. 나는 지난 칼럼에서 ‘배신할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깊이 알기에 의심할 수 있고, 통념을 알기에 그것을 부정할 용기를 내는 힘이다. AI가 지식을 독점한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가장 값진 능력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 능력은 결코 앱으로 다운로드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승이 제자를 신뢰하고 제자의 실패를 함께 책임지는 관계 속에서만 전수된다. 지식은 AI가 전달할 수 있어도, 의심할 용기는 오직 사람 간의 관계로만 물려줄 수 있다. 배성철 UNIST 교학부총장 <본 칼럼은 2026년 8월 19일 경상일보 “[배성철 칼럼]AI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