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 ~ 2007

태동기

유니스트의 설립은 단순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하여 설립된 것이 아니었다. 1992년을 시작으로 총 13년 간 울산시민의 끊임없는 의지와 노력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 유니스트 구성원들은 그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세계적 과학기술대학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 1994. 03
    울산국립대학교설립 추진위원회 구성

    “울산에도 국립대가 있어야 한다”
    전 울산시민의 꿈과 염원이 현실이 되는 데는 긴 시간과 큰 역경이 있었다. 1992년 (김영삼) 대통령 후보의 울산 국립대 설립
    공약을 시작으로 1994년 울산국립대학교설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울산국립대학교설립 추진위원회 발기대회 개최 모습

  • 1997. 10
    울산시, 대학유치기획단 구성

    울산광역시(당시 울산시)는 대학유치기획단을 구성하고 전국 대학, 사학재단, 대기업 등 702개소에 대학유치 홍보자료를 보내며 유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관심을 모으지는 못하여 설립의 꿈은 아득하기만 하였다.

  • 2001. 11
    울산국립대학설립범시민추진단 결성

    2001년 10월 울산 국립대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단 준비모임 개최를 시작으로 그 해 11월 ‘울산국립대학설립범시민추진단’을 결성하였다. 이 추진단은 160개 기관 및 단체 중심으로 약 2,0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었다.

  • 2003.05
    울산 국립대 설립 국민청원을 위한 서명운동

    2002년 3월 울산나눔회 주관으로 국민청원을 위한 100만시민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울산시민의 9%인 총 9만8천여명만 참여하였다. 이들은 실망하지 않고, 2003년 5월 범시민대회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개최하였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4천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이후 직접 서명용지를 들고 다니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고 서명운동 시작 후 1년 6개월 후 신생아, 유아, 노인까지 포함되는 주민등록상의 울산 총 시민 106만명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53만명의 서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또한 직접 서명하여 용지를 보내준 시민들도 총 589,303명이나 되었다. 그 만큼 울산시민의 울산소재 국립대학 설립의 의지는 확고했다.

    대학설립촉진 범시민대회 시민서명운동

  • 2004. 02
    신설 촉구 청원서 국회 제출

    2004년에는 국립대학 설립을 위한 민간단체 릴레이 성명발표 운동이 전개되었다. 범시민추진단을 비롯하여 전국 20여 개 단체가 동참하여 울산국립대학 신설을 촉구하였다. 그 해 7월 범시민추진단원 33명과 지역 국회의원 7명은 전원 상경하여 56만 9,174명의 서명록과 함께 신설 촉구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지역 국회의원과 범시민추진단 회원들의 대학신설 촉구 결의 모습(국회의사당 앞, 2004년 7월 14일)

    국회 민원실에 청원서를 접수하는 모습(2004년 7월 14일)

  • 2005. 08
    국립대 설립을 위한 청와대 회의 개최

    설립 추진이 진척이 없자 울산광역시의회 차원에서 2005년 8월에 울산국립대 설립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고 9월에 국립대 설립관련 청와대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입학정원 1,500명 정도, 설치학과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를 모델로 하고 울산시는 부지를 제공하며, 건축비는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내용을 논의하게 된다.

    국립대설립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시 의회, 2005년 8월 17일)

  • 2005. 09
    대학 설립계획 확정 발표

    울산광역시의회의 노력으로 2005년 9월 마침내 해당 내용으로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와 울산광역시는 ‘울산지역 국립대학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대학 설립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 2006. 02
    대학 부지 선정

    울산광역시는 대학 부지 선정을 위해 2005년 ‘후보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후보지 추천접수를 받았다. 울산 중구, 북구, 울주군 총 10개 후부지 중 평가를 통해 2006년 2월 울주군 반연지구를 최종 대학 부지로 선정하였다. 자칫 지역 간 마찰이 빚어질 수도 있었으나 울산 국립대 설립의 염원으로 다같이 뭉쳐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한 우수 사례로 남았다.

    후보지선정위원회를 구성,
    위촉장을 전수하는 모습(2005년 12월 12일)

    최종 선정된 대학부지(반연지구)

  • 2007. 02
    (가칭)국립대학법인 울산국립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률(안) 발의

    당시 정부는 전국의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립대학을 점차적으로 법인대학으로 전환하는 정책근거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국 국•공립대학 연합 등의 강한 반발로 ‘국립대학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은 연내 상정이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 울산광역시는 단독 법률 제정을 추진키로 결정하게 된다. 정부입법이 아닌 의원 발의 형식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울주군 강길부 의원 이 법안 발의에 적극 나섰다. 강길부 의원이 2007년 2월 12일 발의한 ’(가칭)국립대학법인 울산국립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률(안)‘은 2007년 3월 5일 가결되었는데, 이는 본회의 의결까지 23일이 걸린 최단기 입법화과정을 거친 법률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국회 의원인 강길부의원 및 정갑윤의원은 물심양면 법안 가결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법안 가결을 노력을 하였다.

  • 2007. 11
    UNIST 초대 총장 취임

    2007년 9월 유니스트 초대 총장으로 조무제 총장이 임명되었고, 법인 설립 등기를 마쳤다. 그해 11월 울산시의 지원을 받아 총장 취임식 및 기공식을 가졌다. 조무제 총장은 취임사에서 울산과기대를 카이스트, 포스텍과 견주는 세계 최고 명문대학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조무제 초대총장 취임식 및 기공식

    UNIST 기공식(2007년 11월)

2007 ~ 2009

개교준비기

유니스트의 설립은 단순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하여 설립된 것이 아니었다. 1992년을 시작으로 총 13년 간 울산시민의 끊임없는 의지와 노력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 유니스트 구성원들은 그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세계적 과학기술대학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 우수 교수진 채용

    조무제 총장은 “대학의 질은 결코 교수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우수 교원 채용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조 총장은 2008년 2월 말부터 약 2주간 UC버클리, 스탠퍼드, 조지아공대, 하버드 등 미국 최고 명문대학을 직접 순회하며 울산과기대의 비전을 설명하고 유니스트에 올 것을 설득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국내외 최고 석학 586명의 지원자가 응모하였고 2009년 개교 전까지 47명의 교수를 채용하였다. 교수진 평균연령은 38.6세로 전국 어느 대학보다도 젊고 유능한 교수를 모집하였다.

    UNIST 공사 현장(2008년)

  • 글로벌 교육 제도 도입

    유니스트는 ‘융합학문 특성화 대학’, 창의적 인재양성‘, ’글로벌 대학‘ 등 3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글로벌 대학의 교육 환경을 구축키 위해 노력했다. 세계 유수 대학을 벤치마킹하였는데, 학부교육은 미국 올린 공대, 대학원 및 연구 분야는 MIT, 산학협력은 조지아 공대’를 벤치마킹했다. 특히, 조무제 총장은 홍콩과기대 총장과의 만남을 통해 글로벌대학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전 강의 100% 영어강의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굳혔다.

    UNIST의 봄

  • 우수인재 모집

    원 계획은 2010년 개교키로 하였으나 조무제 총장은 계획을 앞당겨 2009년 개교를 목표로 준비를 서둘렀다. 가장 당면한 문제는 우수인재 모집이었다. 당시 학생기숙사가 완공되지 않아 개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입학생들을 우선 교수아파트에 수용키로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유니스트는 우수 입학생 유치를 위해 1,000명이던 입학정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500명을 뽑기로 결정하였다. 일각에서는 ‘반쪽 개교’라고 빈정거리기도 했으나 유니스트는 대학의 미래를 위해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지원자가 몰려도 뽑지 않기로 한 것이다. 또한 조무제 총장은 전국 과학고 순회를 하며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직접 발로 뛰었고,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학부모를 대상으로 입학설명회를 개최하였다.

    UNIST의 여름

  • 첨단 연구장비 구축

    우수 교수를 모으기 위해서는 최첨단 연구장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조무제 총장은 20여차례 직접 국회를 들락거리며 국비 확보를 위해 발로 뛰었고 지역 국회의원의 지원으로 총 314억원의 국비를 확보하게 되었다. 개교 초기 연구장비 구축 비용으로는 부족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연구장비 구입비 확보는 당시 유니스트의 큰 과제로 남았다.

    UNIST의 가을

  • 울산 광역시•울주군•지역 기업의 전폭적 지원

    울산광역시는 양해각서를 통해 매년 100억원씩 15년간 1,500억원의 대학발전기금을 조성하여 대학에 제공키로 약속하였다. 또한 울주군에서도 매년 50억씩 10년간 500억의 발전기금을 대학에 기여키로 했다. 또한 지역 대표기업인 경동도시가스(대표 송재호)는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2년간 경동장학재단을 통해 총 50억원의 장학기금을 대학에 지원키로 했다. 지금의 유니스트 성장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그리고 지역 기업의 적극적인 경제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UNIST의 겨울

2009 ~ 현재

개교이후

이 시기는 UNIST 조무제 초대 총장의 전략 및 리더십에 크게 발휘된 기간이다. 그는 “대학의 질은 결코 교수의 질을 넘을 수 없다”라는 일념 하에 우수 교수진 모집을 위해 직접 해외 순방을 통해 글로벌 과학자를 만나며 UNIST로 올 것을 설득하였다. 또한 우수 학생 모집을 위해 직접 전국 우수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설명회를 진행키도 하였다.

  • 2009. 03
    최초 국립 법인화 대학으로 개교, 새로운 시작

    2009년 03월 유니스트는 공사가 한창인 현장에서 개교식과 함께 입학식을 가졌다. 첫 입학식에서 총 500여명의 입학생이 대학의 비전인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세계적 과학기술 선도대학’ 실현에 맹세했다. 첫 입학생들의 국내 상위 5%의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었고 단숨에 국내 최고 대학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UNIST 1회 입학식(2009년 3월 2일)

  • 2011. 11
    ‘비전 2030’ 선포

    유니스트는 2011년 10월 2030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내용의 2030 비전을 선포하였다.

    UNIST Vision 2030 선포

  • 2011. 09
    조무제 총장 연임

    후보자 심사를 거쳐 UNIST 조무제 초대 총장이 제2대 총장으로 연임됐다. 지난 임명 기간 동안 UNIST가 보여 준 놀라운 성장은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는 다시 한 번 세계 10위권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도약’이 가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조무제 총장

  • 2013. 02
    제1회 학위 수여식 개최

    2013년 2월 26일은 UNIST가 개교 후 최초로 졸업생을 배출한 날로 그 의미가 큰 날이었다. 조무무제 총장은 졸업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과 도전적인 정신으로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글로벌 리더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졸업생 대부분은 연구중심대학답게 UNIST 대학원을 진학하여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다.

    제1회 학위 수여식

  • 2013. 06
    2단계 BTL 착공

    2013년 6월 13일 총 2,000억원의 추가 투자를 통한 ‘세계 10위권 연구중심대학’ 도약을 위한 교육 및 연구 시설 환경 구축을 목적으로 2단계 BTL 착공식을 가졌다. 또한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교수, 연구원을 위한 아파트도 추가로 늘리기로 하였다.

    UNIST 2차 BTL 조감도

  • 2014. 10
    3개 IBS Campus Research Center 유치

    UNIST는 2012년을 시작으로 총 3개 IBS Campus Research Center를 유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Steve Granick, Rodney S. Ruoff, Kyung Jae Myung등 세 명의 세계적 석학이 UNIST 교수로서 각 사업단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UNIST는 10년간 총 3,000억원의 연구비를 유치하게 되었다. 개교 이후 짧은 기간 동안 UNIST의 연구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Rodney S. Ruoff ‘Center for Multidimensional Carbon Materials’ 단장

    Steve Granick ‘Center for Soft and Living Matter’ 단장

    Kyung Jae Myung ‘Center for Genomic Integrity’ 단장

발전기금참여